“가끔씩 외도도 하고 가끔씩 술독에도 빠지고 늘 조금은 이기적이고 이따금씩 (법 테두리 내에서) 사소한 사기도 치는 ‘속인(俗人)’은, 높은 대의를 향한 열정으로 충만하고 그 대의를 위해 자신의 욕망과 재산과 심지어 목숨까지 희생할 수 있는 사람에 비해 일반적인 평가 기준으로 볼 때 분명 ‘저급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극악무도한 무언가를 드러내는 것은 다름 아니라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두번째 인간형-엄격한 종교 재판관이나 국가안전위원회 위원장 같은-입니다. 무자비한 광신도가 되는 사람은 소인이 아니라 위인이나 성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대의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쉽게 그 대의를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도 됩니다.” (C. S. 루이스, <시편산책> 44, 45쪽)

 <나니아 연대기>를 쓴 영국 작가 C. S. 루이스는 30대에 독실한 신앙을 가지게 된 뒤 종교와 관련된 글을 많이 남겼다. 그의 글에는 단순히 종교란 울타리에 국한되지 않는 비판 정신이 살아있다. 텍스트가 성경이었을 뿐, 콘텍스트인 세상을 향한 관심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의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대의를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명제를 두고 이슬람의 특정 종파만을 떠올리지 말자. 얼마나 많은 비극들이 정의란 이름으로 행해졌고, 행해지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의명분 앞에 스러져갔는가.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대의도,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대의도 모두 위험하다. 사람의 생명과 인권보다 더 소중한 대의는 없다는 것, 자신이 가진 신념을 이유로 다른 이들을 열등하게 취급해선 안 된다는 것,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는 데서 인간의 사회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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