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을 없애는 데 있어 ‘이만하면’이란 말은 통하지 않는다. 70도 경사로가 30도로 낮아진다해도 휠체어가 올라갈 수 없는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정유진 경향신문 국제에디터, 2022년 5월5일 <정유진의 사이시옷> ‘70도 경사로가 30도로 낮아진들’)
‘이만하면’이란 말은 포만감을 준다. 할 만큼 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짜 포만감이다. 현재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더는 하기 어렵다, 더 노력하지 않겠다는 멈춤의 신호등이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이 말을 대입해보자. 자녀를 사랑한다면서 ‘이만하면 됐지’라고 생각할 부모가 얼마나 있을까. 배우자에게 “이만하면 당신에게 해줄 만큼 해준 거 아니야?” 하고 말할 남편이나 아내가 얼마나 될까.
더욱이 부당한 태도나 행동을 시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만하면’이란 말을 써서는 안 된다. 누군가의 발등을 밟고 있으면서 그 압력을 조금 줄였다고 해서 “이만하면 참을 수 있는 거 아니야?”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는가.
차별은 남의 발등을 밟고 있는 것보다 더 심각한 가해행위다. 차별의 정도를 낮췄다고 “이만하면 된 거 아니냐?”고 말한다면 그 자체로 차별이다. 차별을 좀 없앤 걸 무슨 시혜처럼 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 해주면 된 거 아니야? 더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잖아. 그러니 그냥 참고 살아. 알았지?’ 이런 생색내는 마음들이 ‘이만하면’이란 한 마디 속에 압축 내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