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념>은 우리가 모든 것을 끊임없이 탐색만 하면서 잃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설득력 있게 파고든다. 다양한 사례 분석을 통해 전념이 필요한 이유를 납득하게 되면 ‘무한탐색 모드’를 끄고 ‘전념 모드’를 켜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하지만 책은 자기계발서에 멈추지 않는다. 개인의 성찰을 넘어 공동체의 문제로 나아간다. 전념의 가치가 존중받지 못하면서 “유대는 느슨해졌고, 신뢰는 얕아졌으며, 선택지 열어 두기는 이 시대의 모토가 됐다”.(83페이지) “공동체를 변화시키려면, 우선 그 공동체 안에 속해야 한다…변화를 주장하기 전에 먼저 헌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개혁가가 되기 전에 먼저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너’가 변해야 한다는 말로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우리’가 변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공동체와 유대를 맺고 헌신해야 한다.”(194~195페이지)
현실은 어떠한가. “선택지 열어두기 문화가 장악하는 곳에는 공동체 참여가 방치된다…. 공공생활과 정치 활동의 많은 부분이 전문화되어 공동체 전체가 아니라 돈을 받고 고용된 사람들이 그 일을 대신한다. 공공 영역은 이웃들이 함께 모여서 공통된 문제를 풀고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는 곳이 아니라, 개인적인 불만을 당국에 전하는 자리가 됐다. 그 결과, 많은 이가 고립됐다.” (290 페이지)
책은 “미국의 시민 생활이 ‘회원제’에서 ‘관리제’로 옮겨갔다”는 시다 스코치폴의 경고를 인용한다. (<축소된 민주주의>) 시민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권리를 주장하면서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정부기관에 모든 권한을 위임하고 대신 관리하도록 한다. 시민들은? 관리감독을 받으며 살아가는 ‘피관리자’다.
미국만의 문제일까. 한국도 선거기간에만 ‘주인님’ 대접을 받고,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고객님’ 대접을 받는다. 알라딘의 램프인 걸까. 내가 낸 세금으로 세 개의 소원만 들어주겠다는 투다. 인터넷 신문고에 글을 올리고 소란이 커져야만 겨우 목소리를 들어줄까, 말까다. 정부기관은 그 알량한 권한마저 외부의 기관과 업체들에게 하청에 재하청을 주고 있다.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은 ‘허락받지 않은 행정외주’(2022년 1월20일 한겨레 칼럼)에서 “네이버와 카카오는 누구의 허락을 받고 언제 어떻게 국가기관이 되었는가?”라고 묻는다. 네이버나 카카오 QR 없이는 카페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을 지적한 말이다. 안희경은 “디지털 자본주의라는 회오리 속”에서 “‘허락받지 않은 행정 외주’이자 기업의 이윤을 위해 국민의 우울을 애써 모르는 척하는 정부의 태업”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주권자로서의 권한이 위임되고 또 재위임되다 보면 남의 집에 얹혀 사는 기분이 든다. 정부에 무엇을 요구하려고 해도 그 과정이 복잡하고 까다롭다. 책임자를 찾으려고 해도 책임자를 확인하는 일이 무슨 난수표 해독처럼 힘들기만 하다. 정부부처→산하기관→외부 업체로 이어지는 권력의 피라미드 앞에 서면 왠지 주눅이 들기 마련이다.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당당함은 증발해버린다.
정부기관의 레드 테이프(관료들의 형식주의)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확산되면서 시민들이 행정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은 더욱 더 멀어지고 좁아졌다. 디지털이 익숙지 않은 시니어들에겐 앱을 다운 받고, 실행 버튼 누르기가 주저되고 번거롭다. 아니, 공포스럽다. 영화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가 실업 급여를 받기 위해 찾아간 관공서에서 복잡한 절차 때문에 번번히 좌절하는 모습은 한국의 60, 70대에겐 바로 자신들의 일이다.
그렇다면 공무원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시스템 전반을 관리하는 매니저가 돼 가고 있다. 공무원들은 외부 업체가 얼마나 일을 잘 하고 있는지 관리하느라 바쁘다. 정부와 시민의 거리가 갈수록 멀어지면서 정부기관에 대한 신뢰는 낮아진다. 책은 경고한다.
“부패를 가장 잘 이용하는 인물, 즉 기관을 신뢰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대중과 대중에게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는 기관들 사이에서 이익을 본 사람들이 권력을 얻기 시작했다. 그 결과, 시민 생태계는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한 환경으로 변했다.”(293~294쪽)
유튜브와 SNS에 창궐하는 ‘화살촉’들을 보라. 정부와 시민의 벌어진 틈을 비집고 들어온 그들이 어떻게 정치적, 사회적 권력을 장악하고 행사하고 있는지를 보라.
<전념>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떤 일들이 생기는지 말해준다. 모니터를 두 개씩 켜 놓고 연신 무언가를 검색하면서 동시에 두세 개씩 띄운 카톡창에서 손가락 잡담(finger talk)을 하는 게 우리의 일과다. 이렇게 한시간, 두시간, 하루, 이틀이 지나다 보면 늘 피곤하고 급기야 ‘번아웃’이 된다. 그 사이 중요한 것들이 점점 소실점 밖으로 밀려난다. 그 사이 당신과 나는 시민으로, 주권자로 존재하기를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