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安하다. 남에 대하여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럽다.
사과의 표현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을 잘못하거나 양심에 거리끼어 볼 낯이 없거나 매우 떳떳하지 못하는 뜻의 ‘부끄럽다’와 죄스러울 정도로 미안하다는 뜻의 ‘죄송하다’가 강도 높은 축에 속한다. 부끄러워서 대할 낯이 없다는 뜻의 ‘면목이 없다’도 강한 미안함의 표시다. ‘송구하다’ ‘송구스럽다’는 두려워서 마음이 거북스럽다는 뜻으로 강도가 약하다. 이러한 강약의 차이가 정치적 언어에 활용되면서 다채로운 프리즘을 빚어낸다.
[사용상의 주의사항]
1. 사과를 해야 하는 데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면 단순 명료하긴 하나, 마음에 와 닿는 느낌도 밋밋하고 공식적인 느낌도 덜하다. 그래서, 공식적인 사과 표현으로 많이 쓰이는 말이 “송구합니다” “송구스럽습니다”다. 우선, 한자어의 특성 때문인지 공식적인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도 ‘전적으로 내 책임’이란 어감은 아니다.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데 대해 어쨌든 미안하게 됐다는 뉘앙스다.
2. 사과에도 상하 관계가 존재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일선의 책임자는 “죄송하다”고 하고, 그 상위의 책임자는 “송구스럽다”고 한다. 일이 일어난 게 직접적으로 자신의 책임은 아니지만 잘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느낀다는 것이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다”는 말이 뒤따르곤 한다.
3. 정부 고위책임자의 대국민 사과에선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 감정을 담지 않은 채 “사과한다”는 팩트를 전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 고강도 사과 표현이 나온다.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머리 숙여 사죄 드립니다.”
4. “인간적으로 미안한 마음입니다”는 공직자나 정치인이 특정 인물이나 그룹에 사과할 필요성이 있을 때 쓰는 말이다. 자신이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혹은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했던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했던 것임을 이해해달라는 뜻이다. “인간적으로”라는 말이 들어가서일까. ‘인간적으로’ 괜찮은 사람으로 포장된다.